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재산 분할 1조3808억원’이라는 판결이 나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판결은 대법원 상고심에서 어떻게 결론이 날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비자금 쪽지 메모’의 증거력,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혜와 관련한 사실 관계 오류, 노 관장의 기여도 등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7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상고장 제출 절차를 시작했다. 판결문을 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상고장을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며, 곧 관련 소식이 전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고장을 포함한 서류 확인 절차와 법리 검토 과정 등을 고려하면 결론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상고심 준비 과정에서 최 회장 측의 입장은 크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30일 항소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에 대해 유입 자체를 부정한 최 회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300억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최 회장 측은 비자금을 받지 않았음을 증명하지 못해 비자금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모친 김옥숙 여사가 남긴 ‘선경 300억’ 쪽지 메모와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근거로 비자금이 최 회장의 부친 고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흘러 들어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이러한 메모와 어음의 증거력에 대해 논란이 있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쪽지 메모와 어음이 찍힌 사진만으로 항소심에서 핵심 증거가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상고심에서는 이러한 증거력 문제뿐만 아니라 비자금의 사용 내역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특히 비자금이 태평양증권 매입에 사용됐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 어음 발행일이 1992년 12월인데, 태평양증권 인수는 1991년 12월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즉, 받지 않은 돈으로 증권사를 인수했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보호막 덕분에 SK가 성장했다는 주장도 논란이 되고 있다. SK는 노태우 정부 당시 제2이동통신사업권을 따냈으나 특혜 의혹으로 인해 사업권을 반납해야 했고,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 다시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이에 대해 당시 상황을 직접 경험한 SK 경영진은 “어렵게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는데 정경유착으로 왜곡됐다”며 불만을 표했다.
노 관장의 기여도 역시 법리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 비자금이 SK에 유입되고 이를 통해 SK가 성장했다는 가정 하에, 세월이 흘러 이를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비자금이 유입됐다면, 이를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하는 것도 이상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최 회장 측이 상고심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가사소송에서는 원심을 뒤집는 판결이 드문 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1심에서 665억원이었던 재산 분할액이 2심에서 1조3808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3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SK 주식의 특유재산(혼인 전 보유한 고유 재산) 인정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